- '카나타, 오는 길에 케이크를 사서 와 주겠나? 들어올 때 산다는게 깜박했지뭔가!'
"그거면 되나요? 「재료」가 부족하진 않은가요?"
- '음... 그거면 충분하다! 아이들이 모두 오기로 했으니 적당한 크기로 골라다오! 참, 너무 크지 않은걸로 부탁한다! 아마 연말에 있을 신년 공연을 앞두고 다들 체중 조절 중일테니 말야. 무슨 말인지 이해했겠지, 카나타?'
"「물론」이에요...~"
- '이따 보자꾸나!'
잠시 뜸들이는 듯한 침묵이 이어지더니 작게 '쪽' 하는 소리와 동시에 통화가 끊겼다.
치아키, 꽤나 귀여운 일도 할 줄 알게 됐네요...♪
카나타는 집으로 재촉하던 발걸음을 근처 상점가로 돌렸다.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 졸업한지 약 2년만에 다섯명의 유성대가 모두 모이는 날이었다.
Creme brulee.
- 부드러운 달콤함, 그것은 나만의 것.
솔솔(@solsol_star)
상점가에 길게 늘어선 온갖 크리스마스 장식들과 거리와 거리가 만나는 중심점에 세워진 거대한 트리는 꽤 즐거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여전히 익숙치 않은 지상의 풍경에 넋을 놓고 바라보면서 카나타는 오늘 아침 치아키가 선물이라며 직접 목에 매어주었던 빨간색 목도리를 최대한 끌어올렸다. 같이 오면 좋았을걸. 크리스마스에는 뭘 할까 라고 물어오는 치아키에게 저녁 초대를 제안한 건 카나타였지만 더 열성적으로 준비를 시작한 건 치아키였기에, 어제 저녁부터 밑재료들의 준비에 정신이 없어 하루 종일 집 안에만 있는 치아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물론 이런 저런 생각들을 하면서도 치아키의 심부름도 잊지 않고 주변의 빵집, 디저트 가게, 카페 등의 쇼윈도를 빠른 시선으로 훑어 내리며 적당한 케이크를 고르는 일 역시 게을리 하지 않았다.
초콜릿이 너무 많고, 생크림이 적당하지만 크기가 너무 크고... 혼자 돌아다니는 쇼핑은 늘 숨막힌다 생각하면서도 이번 만큼은 치아키를, 유성대 후배들을 위해 반드시 해내보이겠다며 의지를 다졌지만 마음과 달리 적당한 케이크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게 약 30분 가까이 상점가를 헤집고 걸어다니던 카나타는 한숨을 쉬며 근처 벤치에 주저 앉았다. 잠깐 벤치에 기대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저녁 식사가 끝나면 치아키와 같이 산책을 나와야겠단 생각을 했다.
"저 집 케이크 꽤 독특했지?"
"맞아, 위에 올릴 수 있는 별들도 색색깔로 예뻤어."
"내년에도 할까? 다음에 가보자."
더듬이가 잠깐 움직인 것 같아 보였지만, 착각이겠지.
카나타는 두 사람이 지나가는 방향의 반대쪽을 바라보았다. 이쪽 골목은 가본 기억이 없는데... 이제 적당히 쉬었다 싶어 일어나 엉덩이를 두어번 툭툭 털었다. '위에 올릴 수 있는 별'이란 말에 홀린듯 반응해 걸음을 빨리했다. 혹시 다 팔려 사가지 못하면 어쩌나 싶은 마음에 더더욱 빨리.
"어서오세요-"
도착한 작은 빵집의 쇼윈도 너머로 본 케이크는 일반적으로 보던 케이크와는 조금 달랐다. 카나타는 투박하게 쓰인 가타카나들을 읽어 조그맣게 '구겔호프...' 라고 중얼거리곤 망설임 없이 가게 문을 열었다. 들어가자마자 훅 밀려 들어오는 크리스마스 내음에 저절로 웃으며 점원에게 이걸로 하나 주세요, 라고 바로 주문을 넣었다.
"여기에서 마음에 드는 색깔을 고르시면 위에 얹어드릴게요."
"으으음..."
카나타는 손가락 한 마디 크기의 작은 설탕별들을 보며 색깔을 눈으로 찬찬히 훑었다. 빨강, 파랑, 노랑, 초록...
"「까만색」이 없어요..."
"죄송합니다...까만색 별은 만들지를 않아서요... 다른 색은 취향이 아니신가요? 노란색 별을 가장 많이 고르시는데 무난하게 이걸로 올려드릴까요?"
까만색이 아니면 다섯명의 색깔이 맞춰지지 않아요... 카나타는 한숨을 폭 내쉬며 일단 네 개의 색깔을 말해주었다. 점원은 카나타를 이상하게 바라봤지만 별 말 없이 네 가지 색깔을 골고루 구겔호프 위에 얹어주었고, 카나타는 아직도 고민에 빠져 있었다.
카나타는 아직도 다섯명이 모였을 때 만큼은 테토라가 블랙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다른 아이들은 어떨지 몰라도 자신에게는 치아키가 영원한 레드였으니까. 하지만 졸업을 앞둔 치아키가 언제까지나 레드일 수는 없었다. 치아키는 졸업을 얼마 남기지 않은 시점에 테토라에게 자신의 여벌 유닛복을 선물했고, 그것은 곧 자신이 더이상 레드가 아니라는 것을 말하는 셈이었다. 테토라는 자신이 받아도 되는 색깔인지 모르겠다며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유성대의 리더는 언제나 레드여야한다는 치아키의 완강한 태도에 이내 받아들고 치아키를 꼭 안아주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자신들은 학원을 떠나고 남아있는 아이들은 뒤를 이어 활동을 계속해야한다.
'...크리스마스니까?'
기적 같은 단어를 떠올리고 난 뒤 카나타는 박스에 구겔호프를 넣으려는 직원을 불러 포장을 멈추었다.
"저 위에, 조금 더 큰 저 「빨간별」을 앞에 올려주세요♪"
"엇, 노란색이 아니구요? 알겠습니다..."
이건 크기 조절에 실패해서 나온 빨간별인데... 점원의 작은 중얼거림에도 아랑곳않고 카나타는 오늘 하루만 과거와 현재의 레드를 모두 인정해주기로 했다.
* * * * *
"다녀왔습니다~♪"
"오, 어서와라! 나도 이제 거의 준비가 끝났다!"
빨간색 체크무늬 앞치마를 두른 치아키가 주방 쪽에서 고개만 빼꼼 내밀어 인사를 건넸다. 카나타는 집안 가득 채워져 있는 맛있는 냄새에 이끌리듯 케이크를 들고 주방 쪽을 향했다. 식탁에 가지런히 준비되어있는 식기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로스트 치킨과 곁들일 으깬 감자 등등... 카나타는 조심조심 사 온 케이크를 옆에 내려놓고 치아키를 뒤에서 끌어안았다. 아직 차가운 카나타의 체온이 닿자 화들짝 놀라면서도 얌전히 안겨주는 치아키는 무언가가 담긴 조그마한 그릇들 위에 설탕을 듬뿍 뿌려 고르게 펴고 있었다.
"뭘 하고 있나요, 치아키?"
"으왓, 차가워...! 보다시피 디저트를 만들고 있었다! 찾아보니 비교적 만들기도 쉽고 맛도 괜찮다더군. 이제 불을 써야하니 조금 떨어져주겠나?"
서랍에서 휴대용 토치를 꺼내 손에 든 치아키가 달래듯 말했다. 허리에 감겨있는 카나타의 손을 어루만지며 부드럽게 떼어냈지만 카나타는 괜찮다며 더 꾸욱 끌어안았다.
"그걸로 뭘 하는 건가요?"
"설탕을 빠르게 녹여서 캐러멜라이즈 시키는 과정이라고 써 있었는데. 그... 영상을 보니 이렇게 굳혀서 숟가락으로 톡톡 부숴먹... 카나타, 잠시만 손 좀 놔다오! 정말로 데일까 걱정이다!"
카나타는 괜찮다며 치아키의 어깨에 턱을 괸 채로 좀 더 매달려왔다. 치아키는 결국 한 손을 카나타의 두 손 위로 올려 단단히 잡은 채 천천히 토치의 버튼을 눌러 불을 켰다. 치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설탕이 금방 지글지글 졸아드는 광경을 바라보며 카나타는 치아키의 머리에 자신의 머리를 살짝 기댔다. 밑에 있는 노란색은 부드러운 크림 같아 보이는데... 그 위에 얹어진 설탕들이 불에 금방 녹아내려 예쁜 갈색빛을 띄며 굳어갔다. 카나타가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자 치아키가 하나를 집어들어 숟가락으로 굳은 설탕층을 두드려 캉캉 소리를 냈다.
"자, 이걸 이렇게 부숴서...아- 한 번 먹어봐."
"아-"
치아키가 숟가락을 조금 세게 내리쳐 방금의 캐러멜층을 부쉈다. 그리곤 숟가락 가득 커스터드 크림을 퍼올려 카나타에게 아, 하고 먹여주었다. 눈을 감고 한참을 우물우물 하던 카나타가 맛있다는 듯 치아키의 볼에 입을 맞췄고 치아키는 다행이라는 듯이 웃으며 한 입을 더 먹여주었다.
"더 먹었다간 저녁을 제대로 먹지 못할테니 지금은 이만 먹도록! 이따가 다같이 먹을 때 또 먹는게 좋겠다. 이건 따로 냉장고에 넣어둘테니까 식사와 별개로 나중에 먹어도 좋아."
"「솜씨」가 좋네요, 치아키- 이거 마음에 들어요. 자주 만들어줘야해요?"
알겠다며 웃는 치아키를 품에서 놔주고 카나타는 그제서야 겉옷을 벗으며 조금 물러난 자리에서 치아키를 바라봤다. 달콤한 막으로 덮어 그 안을 제대로 보여주지 않는 건 꽤나 치아키와 비슷한 디저트네요, 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한창 들떠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치아키에게 제대로 들릴리가 없었기에 카나타는 그저 웃는 걸로 모든 말을 대신하기로 했다.
아이들이 도착했는지 딩동 울리는 초인종 소리에 카나타는 다시 칭얼거리며 치아키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뒤에 매달리듯이 같이 현관으로 나가 문을 열어주고, 추운 바깥 날씨에 코와 귀가 빨갛게 얼어 들어온 셋을 끌어안아주었다.
'지금은 모두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지만 결국 치아키의 속 안의 달콤함까지 즐길 수 있는 건 세상에 저 하나 뿐이니까요..♪'
목적은 다르지만 즐거운 웃음소리.
그렇게 달칵,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