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달링 레시피>
0. 어서 와 대신 먹고 싶은 걸 준비한다.
준비물 : 슈가파우더, 아몬드가루, 계란 흰자, 설탕, 밀크잼, 버터크림
사랑한다는 말은 곧 생일과 그에 곁들여진 마카롱의 필링과도 같았다.
사쿠마 리츠는 고민했다. 필링으론 어떤 게 적절할까. 사소하고 소소한, 누군가에겐 행복일 고민이었다. 고소한 앙글레즈 버터크림? 질리지않고 먹기엔 끝이 미끌미끌해 뒷끝이 깔끔한 편을 선호하는 그로서는 그를 축복이라 이르기엔 부족한 감이 들 수밖에 없었다. 시큼한 맛의 크림치즈 필링은? 입 구석구석 끈덕하게 들러붙는 듯한 점도 있는 시큼한 자극을 좋아하긴 했으나 무언가, 무언가가 들어맞지 않았다. 그는 나름대로의 미각의 철학을 고집하는 편이고, 철학의 제일 위 꼭대기는 주인이 있었다. 그 사람에게 어울리는 마카롱 필링이라, 짧은 고민 끝에 그는 눈을 돌려 부엌을 방관했다. 그가 사랑하는 부드러운 정적이 있는 부엌은 한창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최근 생겨난 사쿠마 리츠의 취미였다. 집 주인이 자리를 비웠을 때 들어 와, ‘어서 와’ 보다는 ‘나 먹고 싶은 게 있는데.’ 로 집 주인을 반기는 것이었다. 그는 이 취미가 줄곧 습관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늘 거실의 폭신한 소파 제일 오른쪽 끝, 네이비빛 쿠션을 끌어안고 꼭 그 자리에만 앉아 눈을 천천히 감았다 떴다. 한참을 그러고 있자면 현관문이 다소 거친소리를 내며 열렸다. 멋대로 들어 와 있지 말라며 투덜대는 목소리에 그는 기다림의 설레는 시간을 담아 입을 열었다. 오늘은 달콤한 게 먹고 싶어. 입꼬리은 엷은 호선을 그리고 있었다.
어차피 그렇게 질색하듯 이야기 해도 차갑게 내쫒기보다는 기어코 조금 더 안쪽으로 들이고야마는 상냥함을 알았다. 상냥함보단 미지근한 마지못한 사랑스러움이었다.
1. 슈가 파우더, 아몬드가루를 체에 쳐 부드럽게 잘 섞는다. 거품기로 섬세하게 머랭을 쳐 올린다.
세나 이즈미는 생각했다. 길들여지는 건지, 길들이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분명히 손수 만들어 먹이는 것은 그인데, 늘 휘둘리기만 하는 것 같아 뒷끝이 살짝 씁쓸했다. 오프가 겹치는 날이면 늘 소파 오른쪽 구석에 앉아 제 집에 돌아온 그를 보며 그는 웃었고, 오늘은 이런 게 먹고 싶다며 그를 반겼다. 하다 못 해 어서 오라는 말을 한 번이라도 했더라면 덜 밉살스럽기도 하지. 그는 늘 그를 위한 디저트를 만들면서 적절한 거리감을 저울질하듯 재료를 저울 위에 덜어가며 계량했다.
머랭을 거품기로 떠 올리니 제법 잘 올라왔다. 체에 쳐 둔 가루들을 머랭에 넣어 꼼꼼히 섞었다. 나른한 시선이 느껴진다. 소파에서 제가 아끼는 쿠션을 한껏 안고, 제 손 끝인지 얼굴인지 모를 어딘가를 바라본다. 손 끝에 힘이 들어가는 게 느껴진다. 정말이지, 도움이 되질 않는다. 인상을 찡그리며 홱 고개를 돌리면 언제 그랬냐는 듯 모른 척 하고서 역으로 왜 쳐다보냐는 듯 눈을 마주쳐온다. 뻔뻔함과 능글함에 속에서 불이 나는 것 같아 다시 눈 앞의 반죽에 집중한다. 귀 언저리가 뜨겁다.
세나 이즈미는, 사쿠마 리츠를 어쩔 수 없는 녀석이라고 생각했다. 학생시절부터 오래 그와 알고 지내면서 반복했던 패턴이었다. 그가 저를 파악하듯 저도 어느 정도 그를 파악했다고 생각하면, 그는 또 저만큼 먼 발치에서 아직 멀었다는 듯 손짓했다. 휘둘리는 것도, 또다시 그를 쫓아가는 것도 어쩔 수가 없었고, 깊어지는 감정도 어쩔 수가 없었다.
짤주머니에 반죽을 옮겨담았다. 테프론시트를 깔아둔 오븐 팬 위에 일정한 사이즈, 일정한 간격으로 반죽을 팬닝하고선 겉이 건조되길 기다리며 볼과 거품기를 씻고 부엌을 정리했다. 150℃로 예열된 오븐 안에 넣고 타이머를 15분에 맞춰놓고선 포트에 물을 넣어 불에 올렸다. 홍차를 우릴 생각이었다. 일전에 건방진 후배에게서 출장 선물이라며 받은 샘플 북이 있었다. 잘 내놓지 않아 찬장 제일 위에 올려뒀던 그것을, 이젠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에 둬야 했다. 그는 찬장에서 컵과 포트를 꺼냈다.
2. 시간에 홍차 향을 곁들여 대기한다.
타이머가 울리자 세나 이즈미는 오븐 팬을 꺼내 식탁 위에 올려뒀다. 받침으로 깔린 것은 예전같으면 그가 거들떠도 보지 않았었던 디저트 관련 잡지였다. 그는 식탁에 앉을 때마다 잡지의 모서리를 한참 만지작대는 습관이 생겼다. 온도가 적절히 식을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 뭘 해야 하나. 고민할 것은 없었지만 고민하는 시늉이라도 해야 했다. 온도만큼 복잡한 감정도 식기를 기다려야 했기 때문이었다. 거실 너머로 들리지 않게 숨을 크게 들이쉬고선 깊게 우려낸 얼그레이와 티 컵을 트레이에 올려 사랑하는 혼잡에게로 다가갔다.
3. 마이 스위티 필링 달링
사쿠마 리츠는 언제 고민했냐는듯 표정을 지웠다. 달달한 향내 사이로 다가오는 향이 오늘따라 묵직하게 느껴졌다. 향이 좋네. 싱거운 말을 건넸다. 내가 그럭저럭인 걸 내놓을 리가 없잖아. 그만큼 싱거운 말이 돌아왔다. 그러면서도 그는 익숙하게 홍차를 두 잔 따라냈다. 찻잎 하나 걸러지지 않은 게 없는 정제된 향이었다. 차도 준비한 사람 성격에 따라 천차만별이라더니. 그 언젠가 누군가에게 들었던 말을 그에게 겹쳐보았다. 조금만 더 달달해도 될 텐데. 한 모금 마시고 나니 아쉬움이 남는다. 그의 취향은 티 한 잔에 각설탕 한 개 반을 넣는 것이었지만, 세나 이즈미는 그 취향을 알고서도 각설탕의 각 자만 꺼내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했다. 그래도 유독 달달한 게 구미를 당기는 날이다. 마카롱이 완성되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나.
사쿠마 리츠는 얼마 전에 있었던 인터뷰를 떠올렸다. 수없이 쏟아지는 질문은 으레 하는 겉치레식이라 머리를 굴릴 것도 없이 가볍게 답하며 빠르게 진행 해나가는 틈으로, 그로서는 드물게 듣는 질문이 그의 입을 막았다.
사쿠마 씨는 연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에 대해 나는, 뭐라고 답을 했었더라.
혀가 녹아 없어질 정도로 달달한 것이 먹고 싶었다. 셋짱, 각설탕은 없어? 그 말에 세나 이즈미는 늘처럼의 온도로 답했다. 쿠마 군, 이 이상으로 단 걸 먹으면 살 쪄. 그 타박마저 간질간질하다. 미각은 여전했지만 앞에 하얀 설탕같은 사람이 놓여있다. 그래? 그럼 됐어. 당도는 잠깐이나마 충분해졌다.
그러고보니 셋짱, 영화 찍는댔었지. 원작이 소설이라고 들었는데. 다음 주면 슬슬 크랭크인 하는 거지? 사쿠마 리츠는 조금 더 설탕을 넣어보기로 했다. 알면서 왜 그걸 묻느냐는 시선에 마주 웃으며 각설탕을 하나 던졌다.
나, 그 책 읽었어.
... 의외네. 관심도 없을 줄 알았는데. 그래서, 어땠는데.
셋짱이 나온대서. 영화로 처음 접하는 것도 나쁘진 않았을 것 같긴 했지만... 셋짱이라면 이걸 몇 번이고 읽고 카메라 앞에 서겠지 싶어서. 셋짱이 나오는 영화라면, 셋짱이 어떤 생각으로 연기를 하는가가 더 신경 쓰이니까.
셋짱의 시선에서 볼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그렇게 이야기 하고서 그는 눈 앞의 잔에 입술을 가져다댔다. 아, 역시 말을 하길 잘 했다. 실수로 그에게 각설탕 두 개를 넣은 모양이었다. 무슨 소릴 하는 거냐며 목소리를 높인 세나 이즈미의 손 끝이 붉었다.
한 개 반보다는 어쩌면 두 개를 넣는 게 취향이었을지도 모른다. 잔을 문 입술 끝이 웃음에 조금 떨렸다.
4. 버터크림에 밀크잼을 섞어 당신과 나 사이에
미쳤나봐. 미친 게 아니고서야 저런 말을, 어떻게 저렇게 뻔뻔하게. 잔을 던지듯 내려놓은 세나 이즈미는 주방으로 도망쳤다.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는 바람에 마카롱이 잘 식었는지 확인한다는게, 그만 흠집을 내고야 말았다. 그제서야 그는 손가락에 힘을 빼고 잘 익은 꼬끄를 떼어냈다. 필링으론 뭐가 좋을까. 냉장고 속에 얼마 전에 그가 불쑥 찾아온 날 만들어둔 버터크림과 밀크잼이 있었다. 마침 마시는 것과 같은 얼그레이 향이었다. 두 가지를 꺼내며 거품기와 볼을 준비했다.
커리어 상 아직 이르다고 생각했던 영화의 배역이 그에게로 돌아왔다. 평소에 그가 짬이 날 때마다 읽던 작가의 신작이었고, 운이 좋게도 작가가 저를 지명한 캐스팅이었기에 사양할 것 없이 받아들였다. 대본 리딩을 위해 배우들과 감독, 작가가 한 자리에 모였던 날, 작가는 세나 이즈미의 손을 잡고 따로 언질을 줬었다. 세나 씨를 평소에 인상 깊게 보고 있었어요. 저도 모르게 세나 씨에게 눈길이 끌려가고 있더라고요. 도무지 세나 씨가 망막에서 떠나질 않아서... 어떻게 생각하실지는 모르겠지만, 세나 씨를 보고 떠오른 느낌을 그대로 옮겨 적은 이야기에요. 제가 세나 씨를 잘 아는 건 아니라고해도, 어쩐지 이런 느낌이 들어서요. 그래서, 영화화를 한다면 세나 씨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부탁 드린다는 말에 오히려 영광이라며 답례를 하고서 자리에 앉았고, 대본 리딩이 진행되었다. 오랜 외사랑 끝에 겨우 손을 잡을 수 있었던, 눈밭의 사랑 이야기였다. 세간에 잘 알려진 세나 이즈미의 당당하고 거침없는 이미지와는 다르게, 속이 미어 닳아없어질 만큼 멀리 돌아가지만 함께 도달하는 결말. 세나 씨를 보고 썼어요. 세나 씨가 아니면 안 돼요. 잘 부탁드려요. 내내 목소리가 귓가에서 울렸다.
귓가에서 목소리를 다 털어낼 쯤엔 버터크림과 밀크잼이 적절히 잘 섞여 움직임에 따라 부드러운 향을 피워댔다. 짤주머니에 필링을 넣어 꼬끄에 짜내고 다시 크기가 맞는 꼬끄를 겹쳤다. 단순한 동작이 반복되는 사이로 부루퉁한 목소리가 뒤에서 그를 안아왔다. 떨어지라고 해도 말을 들어주지 않을테지. 왜. 그만큼 부루퉁한 목소리가 튀어나갔다. 내가 셋짱을 몇 번이나 불렀는데도 대답이 없었어. 못 들었나보다 하고 기다리면 돼지. 싫어, 셋짱은 평소에 한 번 부르면 제대로 이 쪽을 봐 주는걸.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길래 못 듣는 거냐며 등 뒤에 이마를 부벼오는 그에 다 털어낸 줄 알았던 목소리가 다시 살아났다. 세나 이즈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있잖아, 쿠마 군. 그거 사랑 이야기래.
5. 잘 먹었습니다, 마이 달링
실은, 그 책이 나오고 난 뒤로 바빠서 눈에 잘 띄는 자리에 뒀는데도 전혀 손을 못 대고 있었어. 그냥 그 제목만 아는 채로 캐스팅 제의에 응했고, 그 날은 유독 실수를 많이 했어. 리딩을 진행할 때까지만 해도 그 내용에 대해 전혀 짐작조차 가지 않았던 탓이겠지.
세나 이즈미는 반쯤 눈을 감고 조용히 떠오른 것들을 이야기 해 나갔다. 작가의 지명에 기껍게 응한 것부터, 첫 만남에 받은 묘한 눈길, 그대로 손을 잡혀 따라나가 들었던 말들, 다른 사람들 입에서 노니는 짝사랑의 감정. 세나 씨를 보고 적었어요, 세나 씨가 아니면 안 돼요. 대본엔 분명히 그 배역의 이름으로 적혀있음에도 불구하고 리딩 진행 중 몇 번이고 얼이 빠져 흐름을 놓쳐 사과해야 했어. 웃기지도 않지, 천하의 세나 이즈미가 같은 실수를 여러 번이나 하다니. 그는 한 손에 필링을 얹은 꼬끄 위에 마지막 꼬끄를 겹쳐얹으면서 웃었다.
그치만 사랑 이야기라잖아. 나를 보고 썼대. 나는 정말, 대본을 받고 집에 돌아와 몇 번이고 대본에 내 이름이 적혀있는게 아닌지 확인해야 했어. 정말 웃기지도 않아. 짝사랑을 하는 내가 이렇게 비참했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고. 결말을 보고서야 조금 안심했지만... 움직임이 잦아든 그는 이내 허리께에 둘러진 팔에 한 손을 얹었다. 시덥잖은 이야기는 여기까지 할래. 쿠마 군, 먼저 거실에 가 있어. 마카롱을 올려놓는 손 끝이 썼다. 얹어진 손에 힘이 들어갔다. 쿠마 군? 이거 답답한데. 살짝 짜증 섞인 목소리. 아마 미간도 구겨져 있겠지.
세나 이즈미는 상냥한 성정이 그 근간이었다. 늘 당당하게 있고자 하는 의지를 위시한 탓에 본질을 꿰뚫는데는 그로서도 꽤나 시간을 들여야 했고, 옆에 앉을 구석을 굳히는 것도 몇 번을 밀어내고 난 다음에서야 시도해 볼만 했다.
사쿠마 리츠는 이제 좀 더 깊은 곳에 기대를 걸기로 했다.
있잖아, 셋짱.
뭔데?
마법의 레시피를 알려줄게. 셋짱이 원하는 대로 맛있는 디저트를 완성할 수 있을지도 몰라. 준비물은 셋짱이고, 토핑은 자유야. 정량은... 글쎄. 딱히 없으니까 원하는 대로. 쿠마 군을 토핑하면 더 달달해질지도.
뜬구름 잡는 소리를... 정량이 없는 레시피가 어디에 있다고.
장난 같은 것도, 잠꼬대도 아니야. 내 레시피니까.
사쿠마 리츠는 이제야 확신했다. 멀리 돌아갈 것도 고민할 것도 없었다. 그의 철학에도 미각에도 어울릴 게 뻔한 마카롱 사이에 가득 짜 넣을 필링은,
레시피 이름은 '세나 이즈미'야. 준비된 셋짱을 오래도록 돌봐. 셋짱은 자기가 돌보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셋짱이 외로울 틈이 없게 곁에 붙어 있으면 돼. 눈을 마주치는 시간을 점점 늘려가. 어떨 땐 애정을, 어떨 땐 위로를, 어떨 땐 온기를. 토핑은 좀 더 다양할 수도 있어. 셋짱은 조심스러운 구석이 있어. 확신을 주기 위해선 조금 더 단 게 필요해. 셋짱은 살 찐다고 질색할 테지만, 난 담백한 셋짱도, 조금 더 달달한 셋짱도 맛있게 먹어치울 수 있거든.
그러니 확신을 줄게. 셋짱이 내 말을 안 믿고는 못 배길 만큼의, 사랑스러움을 셋짱에게 얹을게. 당장은 단 걸 먹기 힘들다고 할 지라도, 언젠가 익숙해지면 마주보고 사랑한다고 말 할 수 있을지도 몰라. 쿠마 군 표 '세나 이즈미'는 이걸로 완성이야. 어때, 구미가 당기진 않아?
사쿠마 리츠는 그 말을 끝으로 마카롱 하나를 들어 세나 이즈미의 입술에 가져다대고선 똑같은 위치에 입을 맞췄다. 물 흐르듯 이어지는 동작들을 보며 세나 이즈미는 숨길 생각 없이 복잡한 얼굴을 했다. 사쿠마 리츠는 기다렸다. 고르고 고른 말들은 세나 이즈미를 복잡하게 만들었고, 기다림은 그에 대한 댓가였다. 눈 앞에 있는 걸 먹을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참을 수 있었다. 단지 눈을 마주 바라보는 이 시간이 달콤했다. 눈을 몇 번 깜빡이며 생각을 하던 그는 끓여뒀던 차가 두어 번은 식었을 시간이 흘러서야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쿠마 군. 나는 간 보는 게 싫어. 난 딱 맞아 떨어지는 게 좋아. 실패할 확률이 제로에 육박해지니까. 요리를 할 때 늘 정량을 생각하고 간을 보지 않아. 한 번도 거스른 적이 없었어.
한참의 정적이 흐르고서야, 쌓여있던 무엇인가가 밀려나오듯 입술이 열렸다.
하지만, 쿠마 군, 어쩌면 나, 이번엔─